파도가 치는 산

마른 잎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려서로에게 쉼 없이 부딪히니나는 정말로 산에서 파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다 향기는 나지 않았지만그래서 비로소 풀의 내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꽃들이 만든 향의 화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곳이평생을 흔들리다 떨어진 나뭇잎 위인지평생을 파도에 쓸려가던 모래알 위인지그렇게 결핍을 통해 내가 놓인 곳을 알게 됩니다 부족함을 등불 삼으니파도 소리를 들어도나는 … 더 읽기

LED

내 눈앞에 병사들의 수는 이백만그들은 밝은 빛을 뿜으며뜨겁게 죽어간다 무지개 빛깔의 파도들이아무렇지 않은 척 일렁거린다내 망막에 맺힌 건그들 혼자가 아니라그들이 잡은 손이었더라 그 숭고한 희생 덕에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무지하고 미개한 나라는 존재가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겠지 빛나는 모든 것이누군가의 눈을 쨍하게 하지 말기를그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를 너의 색깔은빨강초록파랑

공전

세상이 도는 걸까아니면 내가 도는 걸까 서로 맞잡은 손꼭 맞잡은 손 작용그리고 반작용 내가 너를 밀어내듯이너가 나를 밀어내고내가 너를 잡아당기듯이너가 나를 잡아당긴다 우리 구심점은또 다른 구심점을 돌고그렇게 빙빙 빙빙빙 지구도 태양을 빙빙태양도 은하를 빙빙 세상이 돈다나도 돈다 누군가 손을 놔버리면더 이상 돌지 않겠지 나는 멀리 날아가고너도 멀리 날아가고 넓게 펼쳐진 우주의 도화지 위에나는 점너도 점 … 더 읽기

표류

지구의 날씨는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좋은 컴퓨터도 자연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합니다. 날씨가 예상과 다르면 세워놓은 계획이 무너지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비하지 못한 날씨에 하늘을 원망하거나 일기예보를 비난하기도 합니다. 어두운 그림자가 하늘에 드리웁니다. 암막 커튼처럼 두꺼운 구름들이 햇빛을 덮습니다. 이내 비가 쏟아지고, 구름 사이로 번개가 치기 시작합니다.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파도 위에 커다란 화물선 하나가 떠있습니다. … 더 읽기

가능성의 요람

우주, 이곳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신비로운 곳입니다. 무수히 많은 항성과 행성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우주를 헤엄치고 있습니다. 우주 어딘가의 성간 물질이 핵융합을 일으켜 새로운 별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질량을 이기지 못한 별이 폭발하기도 하며, 별을 으스러뜨린 중력이 빛마저 빨아들이곤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의 이 과정은 마치 멈춰 있는 듯 아득히 긴 시간에 거쳐 일어나지만, 우주 입장에서는 찰나의 … 더 읽기

안녕

외국어는 만날 때와 헤어질 때 인사말이 나뉘어 있지. 만남과 작별의 감정은 분명 다르니까. 하지만 한국어는 둘 다 ‘안녕’이야. 비록 인사 후 우리는 헤어지지만 동시에, 언젠간 또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자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마. 안녕.

별똥별

내게 아주 먼 거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자 사람들의 바보 같은 행동을 하나 알게 됐다. 그것은 바로 수명이 다해서 떨어지는 인공위성을 별똥별로 착각하여 소원을 빈다는 것이다. 바보들. 난 진짜 별똥별이 떨어지면 그때 소원을 빌어야겠다. 그 뒤로 평생 동안 소원을 빌지 못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어떠한 흐름 속에서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그 흐름에 동의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뚜렷한 주관과 신념이 없다는 것은 종종 위험을 수반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다른 사원 한 명이 탕수육에 소스를 부었다. 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구나.

아름다운 지구

여기 한 소년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둘러보며, 때로는 바닥을 헤집고, 정처 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니, 뒤로 가는 걸까요? 오른쪽? 왼쪽? 사실 방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소년은 그저 본능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니까요. ‘뽀드득. 뽀드득.’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며 소년이 걷고 있는 이곳은, 수평선이 보일 만큼 넓게 펼쳐진 플라스틱 섬입니다. 먼 옛날 … 더 읽기